이 책을 읽으려고 사무실에 책을 들고 갈 때 어떤 분이 책을 보고 한마디 하셨다.
"어? 나 이 책 아는데."
"아, 그래요? 읽어보셨어요?"
"아니요, 책 내용이랑 작가가 좀 반 기독교적이라서 별로 안좋아해요."
그 분은 아마 독실한 기독교신자이신가보다. 이 일도 있고 최근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책의 첫 장부터 책이 말하는 내용과 기독교적인 생각들을 연관지어서 비교하면서 읽게됐다.
책은 서문으로 시작한다. 역자의 말과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 30주년 기념판 서문에 권두사까지 하니 서문으로만 30페이지가 지났다. 서문에서 나는 저자가 종교계로부터(특히 기독교)의 비판을 피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시골교사는 자기 학생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없다고 느꼈다며 자기를 찾아와 울었다고 항의를 했다니 얼마나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을 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이 책이 일관되게 "생명체는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윈주의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유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이미 이기적 유전자를 배반할 만큼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임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사람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있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유전자의 목적은 후세에 그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는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데 인간은 뇌(이성)가 발달해서 피임으로써 이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거역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피임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면 정부차원에서의 인구조절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서 또는 요즘 같으면 아이 하나 잘 키우는 데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거나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노력을 아끼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 등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어떤 이유가 됐든 결국 사람은 자기 능력에 따라 아이를 가장 잘 키울 수 있을 만큼 낳아서 기르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 키우는 것보다 자기 인생을 더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냥 능력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처럼 아이를 두 명 이상 키우려면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이라면 중국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데에 그 만큼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피임도구는 단지 번식을 조절하는 수단이고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번식을 조절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를 배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하지만 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뿐 나 역시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를 배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윈주의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유도해서는 안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서문을 제외한 책의 앞부분에서 인상적인 것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창세기처럼 우주만물의 기원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지구에 물질들이 있었고 어떤 우연에 의해 단백질이 생겼고 그 중에 또 우연히 스스로 복제를 하는 복제자가 생겼다는 얘기. 그리고 이 복제자들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을 하면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즉 진화론은 우주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세를 살고 있는 생물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나는 기독교나 천주교인들이 왜 진화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부정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부터 만들고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창조하셨다고 했지만 모세에게 이르실 때는 진화론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드셨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어떤방식으로든 모세에게 그 과정을 다 일러 주었지만 모세가 당시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전달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을 인정한다고 사람이 동물에 비해 특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사람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고 한다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들을 다 만드시고 그 다음에 사람을 만드셨으니 진화론과도 순서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뇌가 이성을 가지게 된 것도 처음 무기물들에서 (우리가 보기에)우연히 자기복제자가 생긴 것과 같은 한 차례의 진화적 도약에 의해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 사건을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는 내용과 연결시킨다면 좀 억지일까?
진화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다. 처음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진화론과 적자생존에 대해 배울 때는 그냥 적자생존이 야생에서는 당연한 진리겠거니 했다. 조금 커서 사회를 알아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사회에도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사회가 점점 각박해져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야생처럼 되어가나보다 했다. 그런데 그것은 거꾸로된 설명이었다. 적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때문에 적자인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이 바로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는 사실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라고 했지만 사실 유전자는 목적도 없고 따라서 무엇을 위해 이기적일 수가 없다. 리처드 도킨스는 단지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유전자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의인화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이점을 책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아무 목적도 이기성도 없는 유전자를 세대의 시간축에 놓고 보면 마치 자기의 복제물(후손)을 많이 남기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세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유전자가 결국에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것을 교과서 귀퉁이에 그렸던 움직이는 만화에 비유하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그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그려진 만화는 비록 누군가 달려가는 역동적인 모습에 불과할 지라도 책을 들고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가며 보면 결승선을 위해 달려가는 한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은 다양한 예시와 각도에서 유전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우리로서는 다소 놀라운 가족 또는 친족간의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배우자간의 자식 떠넘기기라든지 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강한지. 친형제와 배다른 형제의 유전적 친밀도. 유전자가 잔인하고 냉정해서가 아니라 그런 놈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것. 그리고 영물이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런 유전적 이기성에서 대략 일치한다는 점이 놀랍다. 아니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조차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책은 자연과학에 관한 책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사회과학 서적에 더 적합한 것 같다.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를 유전자의 눈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자꾸 생각났다. 설득의 심리학은 몇 가지 설득의 법칙을 제시하는데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등이 그것이다. 이 법칙들이 설득의 도구로써 이용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 법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호의를 베풀면 그것을 갚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것 (상호성의 법칙),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내용을 번복하기가 힘든 것 (일관성의 법칙), 시트콤에서 인위적 웃음소리가 들리면 왠지 더 재밌는 것 같은 것 (사회적 증거의 법칙) 등등 이런 것들이 사람들한테 내재되어 있고 이런 속성은 무의식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성질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아 있다. 마치 빨갛고 예쁜 혀를 보면 자기 새끼 주려고 물고가던 먹이도 줘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새가 살아남은 것처럼.
책은 주로 동물을 예로 들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남의 호의를 갚고자 하는지 유전자의 눈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이론 등을 이용해 왜 우리 사회에서 너그럽고 베푸는 것이 미덕이 되는지 하나님이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 영화
데스 센텐스를 보면서 그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로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마음씨 좋은 편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한 것은 밈(meme)의 도입이었다. 밈은 문화의 자기복제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살아남은 놈이 적자이다라는 것이 진리라면 그것이 꼭 생명체에만 적용되리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밈은 문화의 자기복제자이다. 우리가 부르는 음악은 미디어로 전해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어떤 음악은 수세대에 걸쳐서 애청되기도 하고 다음 세대의 음악가에 의해 재창조되기도 하고 그렇게 전해진다. 종교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국가에서 국가로 그렇게 전파되고 중세의 구교에서 신교로 변모하기도 하면서 전파되었다. 그 와중에서 오랜동안 전해지는 것은 그것이 가지는 밈이 그러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밈은 이슬람교의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이라는 정신일 수도 있고 어떤 음악에서 자꾸 흥얼거리게 되는 후렴구일 수도 텔미의 중독성있는 춤이 될수도 있다. 어쨌든 이책은 문화도 이렇게 그 속에 밈이 내재되어 진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신선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밈이 아닌 또다른 자기복제자는 없을까? 문화라는 개념이 워낙 포괄적이어서 나로서는 더 이상 다른 것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결론을 짓자면, 이 책이 말하는 "생명체는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급진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배치되어 공존할 수 없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다윈주의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유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시골교사에게 찾아가 울었던 학생처럼 굳이 논리를 비약해서 유물론적 허무주의에 빠지기 보다는 이 책으로부터 진화적 관점에서 그리고 유전자의 눈으로 사회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고자 노력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이 암시하는 내용은 요즘 서점에 범람하고 있는 어느 처세술에 관련된 책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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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식 돈 필요하지? 그럴 때마다 사업하자고 하더라. 이번엔 또 뭐야.
형 안녕하세요. ㅎㅎ
아주 가끔씩 형 생각이 났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오늘은 여기까지 찾아오게되었네요.
방문자수가 꽤 많은데요? 하루에 100명이라뉘
아이팥 터치도 있으신 것 같고.
디펜스 끝나고 술한잔 사주세요. 홍홍
안병규는 아직도 잘 보고 있답니다.
이제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
(그래도 가끔씩 돈 내고 봄)
JT
헐 방가방가. 방문자 중에 90%는 스팸이나 웹로봇들이라네. 난 사내 교육시스템으로 안병규를 하고 있지. ㅋ 디펜스 한 달 정도 남았겠군. 디펜스 끝나면 마친 사람이 사는겨 ㅋㅋ 얻어먹어주지.
디펜스 끝나면... 통과한 사람이 사는걸로 해요.
떨어지면 형이 한 잔 사주시고 ㅋ
뭐.. 저도 제가 샀으면 좋겠어요.
연락 드릴께요 ^___^
한 달 쯤 남았나? 디펜스 잘 통과할 수 있을껴. 열심히나 하시게. 머 사줄건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