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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7 wesm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6)
  2. 2007/12/14 wesm 이기적 유전자
  3. 2007/05/16 wesm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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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다니던 시절 세미나 수업에 삼성경제연구소의 누군가가 와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역시 꾼이 하는 세미나라 그런지 한시간이 10분도 안 되는 것 처럼 짧게 느껴질 만큼 재밌는 강의였다. 그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두 가지는 BHAG라는 개념과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BHAG는 Big Hairy Audacious Goal로 머리가 쭈뼛하고 코가 뻥 뚫릴 만큼 원대한 목표라는 뜻으로 아마도 이 책이 쓰여지기 전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나온 개념인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꼭 같지는 않으며 성공하려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된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세 가지 원"이라는 개념을 말한 것 같다.
여하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예전에 들었던 그 강의의 연사가 소개했던 책이기도 하고 여기 저기서 이 책 제목을 여러 번 듣게 되어 좋은 책인가보다 하면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뭐 그렇게 읽게 된 것이다. 책은 두꺼운데 종이가 두껍다. 그래서 페이지 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저자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변환에 성공한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대조군을 비교 관찰하여 그 차이점으로부터 무엇이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이끄는 지 역으로 추론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관찰한 결과를 나는 simple is great로 요약하고 싶다. 위대한 기업이 되지 못한 기업들은 겉으로 자신의 위업을 뽐내기 좋아하는 스타 CEO를 리더로 두고 있었으며 개념없이 좋다는 돈되는 사업들을 이것저것 쑤셔보고 그러다 실적을 개선하거나 도약하기 위해 개념없는 M&A를 하거나 구조조정을 하거나 그런 것들을 반복하다가 다른 기업에 인수당하는 수순을 밟는다. 반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기업들은 나서기 보다는 한 발 뒤에서 은근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리더가 좋은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내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일을 잘 하도록 그리고 자기들이 잘 할 수 있는 일만을 일관성 있게 추구한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도 뭔가 최적화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것저것 아이디어들을 추가하고 잡기를 쓰고 그러다보면 코드는 복잡해지고 복잡해진만큼 성능은 떨어지고 유지보수도 힘들어진다. 그럴 땐 손을 놓고 가만히 보면서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하다보면 길다란 코드는 다 없어지고 몇 줄만 남게 된다.
이 책은 아마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한다고 이벤트나 캠페인을 벌이고 업무 효율을 높인답시며 관리 시스템을 첩첩이 쌓으며 구조조정과 M&A를 수시로 반복하고 스타 CEO들을 영입하고 갈아치우기를 반복하고 그런 것들은 성능을 높인답시고 여기저기 잡기를 부려 코드량만 늘려가는 것이다. 위대한 기업의 시작은 좋은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회사의 일관된 방향을 설정하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면서 회사를 굴려간다.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필요가 없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캠페인도 필요 없다.
Simple is great라고 해놓고 두서없이 막 지껄여놨네. Simple is great다. 공자의 七十而從心이라는 말도 일견 통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이미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프지만 안 아픈 척 그리고 안 아프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생각도 많고 갈등도 많다. 마음의 동요도 일고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도 애매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열에 한 번씩은 분을 못이겨 화도 내고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그러게 마련이다. 칠십이 되면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했으니 그러면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것이고 굳이 배 안아픈 척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simple하다.
무엇이든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얻게 되면 simple한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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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23:25 2008/10/0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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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Books 2007/12/14 00:28 w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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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려고 사무실에 책을 들고 갈 때 어떤 분이 책을 보고 한마디 하셨다.
"어? 나 이 책 아는데."
"아, 그래요? 읽어보셨어요?"
"아니요, 책 내용이랑 작가가 좀 반 기독교적이라서 별로 안좋아해요."
그 분은 아마 독실한 기독교신자이신가보다. 이 일도 있고 최근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책의 첫 장부터 책이 말하는 내용과 기독교적인 생각들을 연관지어서 비교하면서 읽게됐다.

책은 서문으로 시작한다. 역자의 말과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 30주년 기념판 서문에 권두사까지 하니 서문으로만 30페이지가 지났다. 서문에서 나는 저자가 종교계로부터(특히 기독교)의 비판을 피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시골교사는 자기 학생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없다고 느꼈다며 자기를 찾아와 울었다고 항의를 했다니 얼마나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을 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이 책이 일관되게 "생명체는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윈주의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유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이미 이기적 유전자를 배반할 만큼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임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사람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있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유전자의 목적은 후세에 그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는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데 인간은 뇌(이성)가 발달해서 피임으로써 이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거역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피임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면 정부차원에서의 인구조절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서 또는 요즘 같으면 아이 하나 잘 키우는 데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거나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노력을 아끼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 등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어떤 이유가 됐든 결국 사람은 자기 능력에 따라 아이를 가장 잘 키울 수 있을 만큼 낳아서 기르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 키우는 것보다 자기 인생을 더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냥 능력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처럼 아이를 두 명 이상 키우려면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이라면 중국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데에 그 만큼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피임도구는 단지 번식을 조절하는 수단이고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번식을 조절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를 배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하지만 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뿐 나 역시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를 배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윈주의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유도해서는 안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서문을 제외한 책의 앞부분에서 인상적인 것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창세기처럼 우주만물의 기원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지구에 물질들이 있었고 어떤 우연에 의해 단백질이 생겼고 그 중에 또 우연히 스스로 복제를 하는 복제자가 생겼다는 얘기. 그리고 이 복제자들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을 하면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즉 진화론은 우주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세를 살고 있는 생물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나는 기독교나 천주교인들이 왜 진화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부정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부터 만들고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창조하셨다고 했지만 모세에게 이르실 때는 진화론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드셨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어떤방식으로든 모세에게 그 과정을 다 일러 주었지만 모세가 당시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전달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을 인정한다고 사람이 동물에 비해 특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사람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고 한다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들을 다 만드시고 그 다음에 사람을 만드셨으니 진화론과도 순서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뇌가 이성을 가지게 된 것도 처음 무기물들에서 (우리가 보기에)우연히 자기복제자가 생긴 것과 같은 한 차례의 진화적 도약에 의해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 사건을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는 내용과 연결시킨다면 좀 억지일까?

진화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다. 처음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진화론과 적자생존에 대해 배울 때는 그냥 적자생존이 야생에서는 당연한 진리겠거니 했다. 조금 커서 사회를 알아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사회에도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사회가 점점 각박해져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야생처럼 되어가나보다 했다. 그런데 그것은 거꾸로된 설명이었다. 적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때문에 적자인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이 바로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는 사실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라고 했지만 사실 유전자는 목적도 없고 따라서 무엇을 위해 이기적일 수가 없다. 리처드 도킨스는 단지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유전자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의인화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이점을 책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아무 목적도 이기성도 없는 유전자를 세대의 시간축에 놓고 보면 마치 자기의 복제물(후손)을 많이 남기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세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유전자가 결국에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것을 교과서 귀퉁이에 그렸던 움직이는 만화에 비유하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그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그려진 만화는 비록 누군가 달려가는 역동적인 모습에 불과할 지라도 책을 들고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가며 보면 결승선을 위해 달려가는 한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은 다양한 예시와 각도에서 유전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우리로서는 다소 놀라운 가족 또는 친족간의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배우자간의 자식 떠넘기기라든지 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강한지. 친형제와 배다른 형제의 유전적 친밀도. 유전자가 잔인하고 냉정해서가 아니라 그런 놈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것. 그리고 영물이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런 유전적 이기성에서 대략 일치한다는 점이 놀랍다. 아니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조차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책은 자연과학에 관한 책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사회과학 서적에 더 적합한 것 같다.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를 유전자의 눈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자꾸 생각났다. 설득의 심리학은 몇 가지 설득의 법칙을 제시하는데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등이 그것이다. 이 법칙들이 설득의 도구로써 이용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 법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호의를 베풀면 그것을 갚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것 (상호성의 법칙),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내용을 번복하기가 힘든 것 (일관성의 법칙), 시트콤에서 인위적 웃음소리가 들리면 왠지 더 재밌는 것 같은 것 (사회적 증거의 법칙) 등등 이런 것들이 사람들한테 내재되어 있고 이런 속성은 무의식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성질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아 있다. 마치 빨갛고 예쁜 혀를 보면 자기 새끼 주려고 물고가던 먹이도 줘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새가 살아남은 것처럼.

책은 주로 동물을 예로 들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남의 호의를 갚고자 하는지 유전자의 눈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이론 등을 이용해 왜 우리 사회에서 너그럽고 베푸는 것이 미덕이 되는지 하나님이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 영화 데스 센텐스를 보면서 그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로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마음씨 좋은 편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한 것은 밈(meme)의 도입이었다. 밈은 문화의 자기복제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살아남은 놈이 적자이다라는 것이 진리라면 그것이 꼭 생명체에만 적용되리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밈은 문화의 자기복제자이다. 우리가 부르는 음악은 미디어로 전해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어떤 음악은 수세대에 걸쳐서 애청되기도 하고 다음 세대의 음악가에 의해 재창조되기도 하고 그렇게 전해진다. 종교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국가에서 국가로 그렇게 전파되고 중세의 구교에서 신교로 변모하기도 하면서 전파되었다. 그 와중에서 오랜동안 전해지는 것은 그것이 가지는 밈이 그러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밈은 이슬람교의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이라는 정신일 수도 있고 어떤 음악에서 자꾸 흥얼거리게 되는 후렴구일 수도 텔미의 중독성있는 춤이 될수도 있다. 어쨌든 이책은 문화도 이렇게 그 속에 밈이 내재되어 진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신선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밈이 아닌 또다른 자기복제자는 없을까? 문화라는 개념이 워낙 포괄적이어서 나로서는 더 이상 다른 것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결론을 짓자면, 이 책이 말하는 "생명체는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급진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배치되어 공존할 수 없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다윈주의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유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시골교사에게 찾아가 울었던 학생처럼 굳이 논리를 비약해서 유물론적 허무주의에 빠지기 보다는 이 책으로부터 진화적 관점에서 그리고 유전자의 눈으로 사회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고자 노력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이 암시하는 내용은 요즘 서점에 범람하고 있는 어느 처세술에 관련된 책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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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4 00:28 2007/12/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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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삶을 살면서 문득 놀랍고 낯설은 경험을 한다. 그것은 아침에 볼일을 보다가 내 시선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초점맞지 않는 작은 코의 윤곽을 알아차렸을 때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을 보고는 우리 할머니에게도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거리는 소녀시절이 있었을까라는 의심을 했을 때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검은 색을 검은 색으로 보고 빨간 색을 빨간 색으로 보고 있을까를 의심할 때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의심스러울까를 의심할 때도 그렇다.

이것들이 낯선 것은 나의 작은 코를 이 각도에서 이렇게 초점맞지 않은 채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라는 사실과 어쩌면 우리 할머니는 내가 세상에 던져지는 그 날 부터 쭈글쭈글한 손을 가진 할머니로 존재하진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들도 '나'라는 존재감으로 검은 색을 검은 색으로 보고 빨간 색을 빨간 색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나처럼 가끔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살아갈까 라고 묻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어떤 과학잡지였던가 우주의 기원에 관한 글을 읽었다. 아니면 어느 선생님이나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야기는 이렇다. 수많은 우수한 과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 그 존재의 근원에 대해 연구를 했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점점 신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물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듯이 그 존재의 원인이 있는데 이런 관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원인 없이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무엇인가는 왜 존재했으며 그에서 기원한 이 세상과 나는 왜 존재하는가이다. 이런 물음은 비단 나혼자만 했던 것은 아닌가보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평생을 오직 존재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는데에 보냈다고 하는데 그는 기차역에서 4시간 후에 올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을 묘사함으로써 세상에 던져진 인간을 표현한다. 그 사람은 4시간 후에 올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운행 시간표를
훑어보기도 하고 안내도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길에 서있는 나무를 세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무언가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 그래도 시간은 겨우 30분이 지났을 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면서 '의미없는 시간을 때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와 <페스트>를 통해 반항하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카뮈는 페스트로 고립된 도시에서 어떻게든 탈출해 무료한 시간죽이기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그리고 기도로써 신으로부터 주어진 페스트라는 고난을 체념하고 피하려는 신부에게 병마와 싸우는 의사와 보건대에 합류하라고 한다. 구덩이로부터 무거운 바위를 한없이 끌어올리는 무용하고 희망없는 노동이라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가 하듯이 그 곳에서 어떻게든 '버티기'를 하라고 한다.

서영은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소설을 통해 어떻게 해서 우리가 버티기를 할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그것은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노인은 자신이 일부러 버린 아들의 훈장을 꼬마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다시 찾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죽은 손녀딸과 같이 살고 있다고 암시하며 살고 주워온 개도 아들이 키우던 개라고 스스로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지금 얘기한 하이데거가 한 말이나 카뮈나 서영은의 소설에 대한 내용은 모두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라는 책의 내용이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너무나 공감을 했다고나 할까. 이것을 감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아!' 하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것이다.

내가 이렇게 너무도 공감한 것은 아마도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살아라 라는 메시지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과 완전히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은 '나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던져져 게임이 시작하는 시점부터 세상은 만들어져 존재하고 그 때부터 우리 할머니의 손은 쭈글쭈글한 채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내가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사람들은 나에게 검은 색을 검은 색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존재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 뿐이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게임의 미션을 스스로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이것 역시 단지 시간 죽이기에 불과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사는 것은 어차피 살아야 되는 인생을 잘 살기 보다는 어떻게든 살게 해주는 것 뿐은 아닐까 한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과 시지프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산다고 책은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왜 똑같아 보이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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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12:34 2007/05/1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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