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외할아버지 산소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지금은 댐을 지어 물속에 잠겨버린 옛 외갓집 터를 들렸다.
그리고 우리 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방촌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방촌 유물 전시관에 들러주고
천관산 기슭까지만 살짝 들러 촌닭을 먹고 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여름방학 때 마다 외갓집에서
지내면서 매미잡고 물고기 잡고
냇가에서 놀고 그러면서 참 재밌는 시간을 보냈는데
많이 아쉽다.
그런걸 집성촌이라고 한다지?
이 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씨들 이름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보관하고 있는 창고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사람도 없던데 슬쩍 열어서?
등산은 아니고 그냥 산책이랄까.
장천제는 존제 위백규(1727∼1798)를 비롯한 많은 유학자가
수학한 강학소라고 한다.
장천제는 고 앞의 계곡으로도 유명해 우리가 갔을 때는
평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계곡에 자리를 펴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종씨가 한다는 농원에서 촌닭을 사먹었다.
닭을 찌는 동안 닭회를 먼저 내다 주셨다.
닭회가 이 음식의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주시면서 서울서 이런거 먹어봤냐고
닭을 날걸로 한것인디 꼬소하고 맛나다고 권해주셨다.
먹긴 먹었지만 뭐랄까. 비위가 상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엄청나게 크더군. 마늘 듬뿍, 파 듬뿍, 대추 듬뿍, 인삼 듬뿍.
그래 닭이 이 정도는 되야지.
아저씨가 요리를 내오면서 또 한마디 하신다.
"닭이 요 정도 크기는 되야제, 난 서울서 먹는 그 뱅아리들은
비려서 못 먹겠데."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더군.
외갓집에 열린 무화과 열매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운전하다가 길에서 무화과 파는 트럭을 많이 보여서
서울 가는 길에 선물로 사갈까 해서 얼마냐고 했더니
한 대여섯개에 만원씩 하길래 걍 안샀다.
이 시계는 외갓집에 대한 내 첫 기억에서부터
나오는 아주 오래된 시계다.
건전지 없이 태엽을 감아 가는 시계인데
최소 30년은 되어 보이는 이 시계가 아직도 잘 가는 거 보면 신기하다.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외할아버지께서 밥을 주셨겠지만
지금은 누가 밥을 주길래 여태 이렇게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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